<시 한편> 그녀의 뒷모습 그녀의 뒷모습 중년의 여성은 뒷모습 사진을 찍는다바다를 보거나산을 올라 단풍을 보거나때로는 걸어가는 모습도음식을 먹는 것보다만든 음식을 건네는 모습처럼 교복입은 학생 뒷모습이 무척 예뻤다는 말가끔 되뇌다가앞만 보고 걷던 길돌아보면 후회도 변한 모습에 점점 자신이 없어 풍경속 사진 한 부분 귀퉁이를 차지하고전체를 나타내지 않고주인공이 아니지만 한순간이라도 나를 기억해 달라고 아주 작게 말하고 있다. 시와 나의 넋두리 2024.08.28
문태준시인의 "맨발"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 시와 나의 넋두리 2023.12.19
조영일시인을 추모합니다 설산 / 조영일 사람의 일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종일 먼 허공을 지나는 바람처럼 살다가 오늘 떠나는 이별 마찬가지다 니는 오래 살아라 그 말 깨우치듯 아무 말 없이도 열 번 백번 쌓는 목소리 파헤쳐 봐도 바람 소리 뿐이다 「설산」 (2020, 한빛) 계간 편집고문이신 조영일 선생께서 지병으로 2023년 6월 10일 오후 8시경 별세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창간에서부터 함께 시조의 현대적 계승과 '시대사적 공유'라는 화두를 두고 노심초사하시며 항상 앞장서 오셨을 뿐 아니라 자유로우나 단호한 영혼으로 시조단의 예사롭지 않은 성을 쌓아 오셨습니다. 너무나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슴이 메입니다만 남은 자의 몫으로 다만 명복을 빌 따름입니다. [출처] 시조시인 조영일 선생 별세|작성자 시조21 https://.. 시와 나의 넋두리 2023.06.12
[좋은 시 한편] "문득" 주영욱 문득 주영욱 산길 걷다가 길섶에 핀 작은 꽃 보았다 미안하다, 네 이름을 몰라 이름 불러줄 수 없어서 자꾸만 그 꽃에게 미안했다 돌아오는 길 문득, 네 생각이 났다 그 꽃처럼 조그만 너를 어쩌면 이리도 잊고 살았구나 자꾸만 너에게 미안했다 * 안동문인협회 회장역임. 시인 P.S 어느날 잊고 있었던 얼굴들이 갑자기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생긴 것이다. 그냥 잊었다는 것 만으로 미안하다는 것이다.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진다. 시와 나의 넋두리 2023.05.01
별후(別後) -김원길시인- 별후(別後) -김원길시인- 물은 거기서 이리로 흐르고 달 여기 떠서 그리로 진다. 바람이 오가고 구름 영 넘어 가고 오누나만 오고 갈 줄 모르는 사람. 그대는 거기서 꽃 피는 것 보고 나 여기서 잎 지는 것 본다. 세월은 흐르고 머리카락 한 올 두 올 희어 가는데 가고 올 줄 모르는 사람. Melodies of Quiescence 시인 김원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한 대역본. 수록시 별후(別後) After Parting 저자소개 : 김원길 1942년 경북 안동 출생. 성균관대 영문학사 및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취득. 1971년 『월간문학』으로 한국시단에 등반하였다. 시집으로 『개안』,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 『들꽃다발』,『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한다』,『지례유사』, 『적막행』, 산문.. 시와 나의 넋두리 2023.03.13
꿈속의 넋 - 이옥봉 기다림과 그리움의 노래! 한시, 칠언절구의 이옥봉의 시가 문득 생각난다. 꿈속의 넋 이옥봉 요사이 그대 어찌 지내시는지요? 달 밝은 창가에 그대 생각 많이 힘들어요 그대 찾는 꿈속 나의 넋이 자취를 남긴다면 그대 집 앞 돌길은 아마도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夢魂(몽혼)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寒多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출처 : https://blog.naver.com/anjoongkeun/222739484748) ========================================================= 이옥봉의 시와 묘비의 사연 [출처] 이옥봉의 시와 묘비의 사연|작성자 강선 이옥.. 시와 나의 넋두리 2022.07.19
시 한편 소개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큰 관심의 말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속에 좌우를 살피며, 걸어가는 것이 "삶을 음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느린 만큼 오래, 멀리 가기를 원하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오늘 이 한편의 시는 이러한 생각과 같을 것이다. 느리게, 단순하면서 천천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핸드폰 카톡의 소개글은 "누에처럼 걸어가라"이다.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장석주 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 지붕 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느림!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 세계사, 2001 ==========================.. 시와 나의 넋두리 2022.04.16
벗어놓은 스타킹, 나희덕 벗어놓은 스타킹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라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 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가지고 다니는 통장, 은행에서 제공하는 투명비닐 앞면에 윗부분이 낡아 떨어지고 있는 신문지조각 꾸깃꾸깃 신문지를 펼지면 나덕희 시 "벗어놓은 스타킹"이 있다. 오래 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 시와 나의 넋두리 2022.02.08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들깨를 베었다. 늦은 수확이였다. 이렇게 늦게 수확을 해도 남아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 고구마수확에 정신이 팔려서 들깨잎과 열매가 떨어지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한 곳에 너무 몰입하면 반대편 무게가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잊기 힘든 슬픈 일들도 바쁘게 다니면, 잠시라도 잊어 버리는 것과도 같다. 들깨를 도리깨질을 하다가 수년전에 읽었던 시가 생각났다. 수확하는 과정은 같은데 각자의 속마음은 다르다. 가야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마음은 바빠졌다. 호흡을 가다듬어도 숨이 가프다. 굵은 가지를 정리하는 것도, 낡은 잎을 선별하는 것도, 포장너머에 모래가 침입하는 것도 모두 조심조심하였다. 마음도 점점 어둠으로 달려가고 있다.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시와 나의 넋두리 2021.10.29
유품정리사도 울었다. 세평 방 27살 청년이 남긴 캐리어 사연 유품정리사도 울었다 세평 방 27살 청년이 남긴 캐리어 사연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에 살던 스물일곱 살 청년의 캐리어가 죽음 앞에서 담담할 수밖에 없는 유품정리사를 울렸다. 10년 넘게 고인들의 유품을 정리해 온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지난 8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20대 청년이 남긴 유품을 회상했다. 김석중 대표는 “27살 청년이 사망한 집을 정리한 적이 있다”며 “안타깝게 이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사분과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특별한 사연을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이 청년은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으며 침대와 장롱, 책상, 화장실이 딸린 세 평짜리 고시원 방에 살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책상 위에 단백질 보충제 두 통이 있었다. 하나는 새것이었고 하.. 시와 나의 넋두리 2021.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