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의 넋두리

꿈속의 넋 - 이옥봉

무당 거미 2022. 7. 19. 08:36

기다림과 그리움의 노래!

한시, 칠언절구의 이옥봉의 시가 문득 생각난다. 

 

꿈속의 넋

이옥봉

요사이 그대

어찌 지내시는지요?

달 밝은 창가에

그대 생각 많이 힘들어요

그대 찾는 꿈속 나의 넋이

자취를 남긴다면

그대 집 앞 돌길은

아마도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夢魂(몽혼)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寒多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출처 : https://blog.naver.com/anjoongkeun/22273948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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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봉의 시와 묘비의 사연

 

 

이옥봉의 묘비 후면

잔설을 딛고 용미4리 영모탱이 마을에서 혜음원지로 올라가는 오솔길. 초입의 왼편 언덕에서 임천조씨(林川趙氏) 묘역 맨 아랫단의 묘 하나가 기이하게 눈길을 끌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올라가 살펴봤다. 묘비에 조성 일자를 2017년 4월로 밝혔건만, 거기 적힌 사연 또한 적잖이 애틋하여 발길을 붙잡았다.

 

이름은 이숙원(李淑媛) 호는 옥봉(玉峯)으로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선조 때 옥천군수를 역임한 이봉의 딸이며 운강공(雲江公) 조원(趙瑗)의 측실이다. 우리 가문에 현존하는 [가림세고](嘉林世稿) 부록에 옥봉의 시 32수가 수록되어 전해오고 있으며 현세에도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인이다. 운강공과 옥봉의 만남도 예사롭지 않지만 별리의 과정이 애처롭고 생몰연대 역시 불분명하여 죽음의 과정 또한 알 길이 없다. 다만 중국의 어느 바닷가에 시편(詩篇)을 몸에 감은 시신이 떠다녔다는 이야기만이 설화처럼 전해져 오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에 우리 후손들은 옥봉할머님을 추모하고자 운강묘 아래 이 비를 세운다.

 

후손들이 조상의 측실을 기려서 시체 없는 묘를 만들고 묘비를 세운다니, 예사로울 수 없는 일이었다.

이옥봉의 시편들은 절실하고 절박하여 심금을 잡아끄는 맛이 진하다.

 

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夢魂)

요사이 안부를 묻는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달에 비친 사창에는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속의 넋에게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문 앞 돌길은 닳아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 (꿈속의 넋)

 

남편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 시다. 만일 사람의 넋이 흔적을 남기며 다닐 수 있다면 임을 향한 혼백은 수백 아니 수천 번이라도 대문 앞을 들락거려 문 앞의 돌이 닳아서 모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閨情)

오신다고 해놓고 어찌 이리 늦으시나요

뜰에 핀 매화도 시들려고 하네요

갑자기 가지 위에서 까치 소리 들려와

부질없이 거울보고 눈썹을 그려보네요 (아내의 마음)

 

옥봉은 조선 선조 때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였다. 당시는 적서의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다. 그녀는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을 흠모했다. 조원은 효성이 지극하고 자손의 교육에는 엄격한 성품을 지녔다. 옥봉은 그의 첩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으나 조원은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옥봉의 아버지 이봉이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게 된다. 조원은 장인의 청도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옥봉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조건을 달았다. 앞으로 시를 짓지 않을 것.

그렇건만 그녀의 시 한 편이 관가의 판결에 영향을 주는 파란이 일어난다. 조원 집안의 산지기가 억울하게 파주 관아의 옥에 갇혔는데, 옥봉이 그 억울함을 밝히는 시를 지어 보냈고, 시를 읽은 파주목사가 산지기를 풀어줬던 것.

이 사건은 치명적인 비극의 빌미가 되었다. 남존여비, 적서의 차별이 심한 당시에 첩이 시를 짓고 관아에 청을 넣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았다. 엄격한 사회제도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조원은 시를 짓지 않기로 한 조건을 들어 옥봉을 내쳤다.

平生離恨成身病

酒不能療藥不治

衾裏泣如氷下水

日夜長流人不知 (離恨)

평생동안 이별의 한으로 병이 들어

술이나 약으로도 다 소용이 없네

이불속 눈물은 차디찬 얼음장 밑의 물 같고

밤낮을 울어도 그 누가 알아주나 (이별의 한)

옥봉의 기다림과 원망이 전해졌던 것일까. 자신이 내쳤음에도 조원은 그의 문집 [가림세고] 부록에 옥봉이 남긴 시편들을 묶어두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