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의 넋두리

시 한편 소개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무당 거미 2022. 4. 16. 07:31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큰 관심의 말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속에 좌우를 살피며, 걸어가는 것이 "삶을 음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느린 만큼 오래, 멀리 가기를 원하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일 것이다. 

 

오늘 이 한편의 시는 이러한 생각과 같을 것이다. 느리게, 단순하면서 천천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핸드폰 카톡의 소개글은 "누에처럼 걸어가라"이다.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장석주

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 지붕 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느림!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

세계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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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홍 교수 시평

아, 얼마나 그리운 삶인가요!

아, 얼마나 그리운 삶인가요! 산간 외딴 마을 굴뚝에서 빠져나오는 연기처럼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도시 문명의 삶속에서 날마다 쫓기면서 언제 어디에 가나 '빨리, 빨리!'를 외쳐 대고 있습니다

속도에 떠서 사는 카레이서 또는 빨리빨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만큼 오늘의 근대적 삶은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노예, 시간의 종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삐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로서 '느림의 철학'을 동경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한가로이 거닐기, 조용히 듣기, 고급스러운 권태, 마음껏 꿈꾸기, 고요히 기다리기, 내 마음의 시골 고향 찾아가기, 좋은 글쓰기, 포도주 한 잔에 지혜를 떠올리기 등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도시 생활의 번잡함을 접고 삐에스 쌍소의 메시지처럼 한가로이 전원에 파묻혀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라는 이 시처럼 살고 있는 장 시인이 부럽기만 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저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도시감옥에 갇혀 삶의 죄수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 출처:『작은 들꽃이 보고 싶을 때』,

문학수첩, 2003

 

□ 장석주 시인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 인문학 저술가.

1955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했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 평론이 입선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출판사 ‘청하’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 발행인으로 일했다.

2002년부터 동덕여자대학교, 명지전문대학, 경희사이버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EBS와 국악방송에서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의 진행자로 일했다. 그밖에 KBS 1TV 〈TV-책을 말하다〉 자문 위원, 『조선일보』 〈이달의 책〉 선정 위원으로 일하고,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동서 고전에 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세계일보』에 〈인문학산책〉을, 『신동아』에 〈크로스인문학〉을, 『월간중앙』에 〈일상반추〉와 〈인류의 등대를 찾아서〉 등을 연재하고, MBC 라디오에서 〈인문학카페〉를 1년 동안 꾸렸다.

그밖에 『톱클래스』, 『출판문화』, 『한국경제』, 『매일경제』, 『조선비즈』 등에 칼럼을 쓰고, 현재 『조선일보』에 〈장석주의 사물극장〉을 연재 중이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일상의 인문학』, 『들뢰즈 카프카 김훈』, 『마흔의 서재』, 『동물원과 유토피아』, 『철학자의 사물들』, 『나는 문학이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사랑에 대하여』, 『은유의 힘』,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조르바의 인생수업』 같은 감성이 깃든 문장과 인문적 통찰이 돋보이는 책을 잇달아 내며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금융연수원과 국립 중앙도서관을 비롯한 대학교, 기업체, 공공 도서관에서 300회 안팎의 초청 강연을 했다.

애지문학상(2003), 질마재문학상(2010),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사랑상(2012), 영랑시문학상(2013), 편운문학상(2016), 한국슬로시티 본부와 전주시가 주는 슬로어워드(2017) 등을 수상했다.

※ 출처: 알라딘 작가파일,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