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의 넋두리

명태 - 성윤석

무당 거미 2014. 4. 3. 08:30

 

 

 

 

 

 

 

 

 

 

경상도 뱃사람들이 ‘먹태’라고 부르는 바닷고기가 있다. 다른 물고기들이 피해가는 빠른 물살 속에서 살다 보니 지느러미를 한시도 놀릴 틈이 없다. 먹태는 그가 사는 곳이 규정해준 이름일 뿐. 평생 거센 물결과 싸우느라 그 자신도 잊어버린 진짜 이름은 ‘명태’다.

 

 

이달에 만나는 시 4월의 추천작은 성윤석 시인(48·사진)의 ‘명태’다.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이 2007년 ‘공중 묘지’ 이후 7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멍게’(문학과지성사)에 실렸다. 추천에는 손택수 이원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시인이 참여했다.

어시장으로 향하는 오토바이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는 시인은 이 시가 ‘초심(初心)’에 관한 시라고 했다. 어떤 삶의 경로를 거치느냐에 따라 노가리나 코다리로, 동태나 황태, 북어로도 불리게 되는 명태의 삶이, 한때 벤처기업 사장이었다가 신문기자와 공무원, 묘지기를 거쳐 1년여 전부터 경남 창원의 어시장에서 잡부로 일한다는 시인의 모습과 퍽이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단다.

“냉동 창고에서 꽝꽝 얼린 명태를 꺼내는 것 같은 육체노동을 제가 언제 또 해봤겠어요. 처음에는 들지도 못했죠. 그런데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자의적인 직함이나 이름이 없는 어떤 상태에서 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게는 그 무엇으로 불리기 전의 명태가 그런 모습이었죠.”

‘뜯기거나, 얼리거나, 바람에 실리거나,/얼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일이거나’ 같은 명태의 이름을 결정하는 과정들을 나열한 시어에 대해서는 “우리네 인생을 보여주는 비유인 동시에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 온 내 지난 삶을 압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천위원 손택수 시인은 “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물방울이 시집 밖으로 튀어오를 듯 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일에 멍들 대로 멍든 자들, 이 시집을 안주 삼아 소주라도 한잔 들어볼 일이다”고 했다. 이원 시인은 “어보(魚譜)이면서 동시에 뜨겁고 고요한 자화상이다. 비린내와 눈물이 서로를 알아보는, 그러나 침투하지는 못하는 자리에서 성윤석 특유의 ‘어보 자화상’이 탄생한다”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다.

이건청 시인의 선택은 제주를 무대로 활동해 온 나기철 시인의 시집 ‘젤라의 꽃’(서정시학)이었다. “절제의 미를 보여주는 단형의 시편들을 싣고 있다. 길이가 길고 수사가 장황한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시에서 정제되고 절제된 시는 반갑게 읽힌다. 정제와 절제의 시는 강한 정신의 소산이다.”

장석주 시인은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문학과지성사)를 추천했다. 장 시인은 “김경주의 시들은 질량이 거의 없는 유동성과 가변성의 물질을 타고 나간다. 이토록 가볍고 쉽게 사라지는 것들은 견고한 것, 오래 남는 것, 이를테면 세계와 질서의 확실성과 부동성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최근 시집 ‘반복’(문학동네)과 ‘네모’(문학과지성사)를 동시에 펴낸 이준규 시인을 주목했다. 시인은 “끊길 듯 말 듯 반복되는 시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봄꽃 그늘 아래에서 마시는 낮술 같은 투명한 슬픔과 맞닥뜨리게 된다. 댕그라니 놓인 삶 앞에서 변주되어 꽃잎처럼 흩날리는 시어들….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괜찮을 이 승묘한 시편들이 시인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멍게 - 성윤석

멍게는 다 자라면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1803년, 진해현(오늘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으로 유배온 김려 선생은 어족에 관해 형태, 습성, 번식, 효용 등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썼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2014년, 서울에서의 사업이 기울어 마산으로 내려온 성윤석(49·사진) 시인은 어시장에서 일하며 본 다양한 어종과 시장의 풍경을 시로 썼다.

200여 년을 사이에 둔 둘은 비슷한 심정일까.

멍게, 장어, 고등어, 상어, 명태, 임연수, 적어, 아귀… 어시장에서 파는 생선 목록이자 성 시인이 쓴 시 제목이다.

창녕에서 태어난 시인은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녔고, 졸업 후 지역 일간지 문화부 기자, 마산시보 편집장 등으로 마산에서 활동하다 상경했다.

사업이 기운 시인은 10여 년 만에 마산으로 돌아와 지난해 5월부터 생계를 위해 마산어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멀리 바다를 건너온 냉동 생선상자를 나른다. 스스로 어시장 일용잡부라고 부른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일을 하다 원양어선을 탄 베트남 청년이 조기 상자에 그리고 쓴 그림과 글씨를 보고 시심이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어시장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히다 보면 이 사람들과 어시장의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이후로 시인은 6시에 퇴근하고 나면 매일같이 조금씩 시를 썼다.

이 시들은 문학관이 아닌 박물관에 걸렸다.

마산합포구 추산동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은 오는 5월 31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마산어시장 시(詩)전 - 신, 우해이어보를 걸다>를 연다.

“박물관에서 왜 시를 전시하냐고요? 우리 지역민의 삶, 풍경이 그대로 녹아든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마산어시장은 살아있는 삶과, 역사의 현장입니다. 어시장의 오늘을 타임캡슐에 담아 전시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송성안 학예사는 성 시인의 시들은 지역사를 정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은 어시장을 지키고 있는 식구들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고, 정리한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친근한 생선 이름으로 시작해 어시장 사람들의 애환을 녹여내다 보니 전시장에서 시에 어렵지 않게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이자영(57·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장을 보러 어시장에 자주 가는데 시를 보니 그 풍경이 생각난다”며 “시라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어시장 이야기가 나오니 친근하다”고 말했다.

전시된 시들과 더불어 어시장을 배경으로 쓴 다른 시들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으로 곧 엮여 나온다.

3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26일 ‘문화가 있는 날’ 오후 6시 30분에는 ‘성윤석 시인과의 대화’ 시간도 있다. 전시한 시 중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낭송하면 시인이 그 시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