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설악산,대청봉을 지나 오세암에서 불경소리를 듣다1

무당 거미 2012. 10. 8. 07:30

설악산,대청봉을 지나 오세암에서 불경소리를 듣다.

 

 

 

 

 

 

 

 

 

 

<설악산, 대청봉을 지나 오세암에서 불경소리를 듣다>

( 설악산 대청봉 1,707.9m )

◈ 산행방향 : 한계령(서북능선)⇒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산장 1박⇒봉정암⇒오세암⇒백담사

◈ 산행일자 : 2012. 10. 6(토) ~ 2012. 10. 7(일) 〔1박2일〕

◈ 이용차량 : 3931

◈ 산행인원 : 5명 (신부장,김과장,작은권대리,큰권대리,나)

◈ 산행시간 : 총 약15시간 소요(1일 : 6시간, 2일 : 9시간)

◈ 산행거리 : 총 20.7km(1일 : 8.9km, 2일 : 11.8km)

◈ 세부내용


 ◉ 제1일(2012. 10. 6. 토) : 안동에서 출발(05:48)→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05:53)→풍기(06:20)→북단양(06:42)→남제천(06:55)→신림(07:03)→치악휴게소(07:08-7:52)→남원주(08:01)→만종분기점(08:05)→홍천IC(09:46)→인제군 북면 원통리(09:21)→설악휴게소(09:38)→한계령(09:56)→등산시작(10:35)→귀때기청봉과 끝청 갈림길(12:42)→둥근나무(3:40)→끝청(4:05)→중청(끝청갈림길4:44)→중청대피소(4:46)→저녁식사후, 대청봉으로(6:52)→대청봉(7:09)→하산7:21)→중청대피소(7:36)→(중청대피소 지하 210-213번 1박, 담요1장1,000×6장 구입)


 ◉ 제2일 (2012. 10. 7. 일) : 중청대피소(07:08)→소청갈림길(07:32)→소청대피소(07:53)→봉정암(08:18)→동행인 108배 기도후 출발(10:06)→오세암1km전(12:10)→오세암(12:50)→점심후 출발(2:25)→영시암(3:25), 휴식 후 출발(3:37)→백담사 매표소(5:27)→마을버스이용(차비2,000원×5명)→마을버스 출발(5:16)→용대리주차장(5:27)대리운전 만남후 출발(5:57)→원통리 저녁식사→인제군(7:25)→홍천IC(8:15)→북원주(8:40)→만종분기점(8:48)→남원주IC(8:49)→치악휴게소(9:02)출(9:21)→제천IC(9:35)→단양IC(10:00)→영주IC(10:18)→서안동IC(10:44)→안동터미널(10:50)


 ○  프롤로그

  설악산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작년에도 또 그 전에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다시 찾는 설악산에는 변한 것이 있었다. 산을 오르는 우리들이 변하였다. 예전 그 생각과 모습이 아니라 찾을 수 없는 것들, 과거가 되어 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 그리고 떠나가야 하는 시간들의 아쉬움들로 인해 그 마음이 달라졌던 것이다. 

  산행은 늘 기다림의 대상이다.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일상을 털고 자연과 동화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변화되어 새로움을 느끼고 새로움으로 기쁨이 된다. 기쁨이 웃음이 되고,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산은 늘 기다림의 대상이다. 

  다시 설악산의 대청봉과 그 아래 펼쳐진 세상을 내려다보며 찾지 못한 것들을 찾아보는 산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약속을 하며 그 길을 향해 출발하였다.

  작전을 세웠다. 설악산을 비경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감상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산행동안 편안한 숙박이 문제였다. 그래서 산행예정 15일이 되기 전부터 동행할 사람들에게 국립공원관리공단 사이트(http://seorak.knps.or.kr/)에 방문하여 설악산 중청대피소예약을 위한 사전 예약방법 프린트를 준비를 하였다. 시간과 예약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예약 10시를 기다렸다. 산행 당사자들은 모두 예약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옆자리 동료에게 부탁한 것이 혼자 예약(4명)되어서 산행의 첫 시작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같이 갈 예상인원은 많았다. 예약 후 10시간 이내 결재하지 않으면 자동취소가 된다. 그 자리를 다시 예약하는 방법을 기다렸으나 다시 놓치고 말았다. 결국 수시로 해당사이트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산행 예정일을 임박하여 취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 산행 2일전까지 수없이 예약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설악산은 첫 출발부터 그렇게 쉽게 허락하는 산이 아니였다. 

 

≪제1일차≫

   ○ 출발(첫째날, 05:48)

  지난해 예전 산행 멤버들이 각자의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고, 나 혼자 다른 팀에 합류한 것이 1년 내내 미안함을 가지게 하였다. 특히 신부장이 무척 아쉬워했던 것을 잊지 못하였다. 산에 대한 열정과 집념은 배울 점이다. 올해 산행코스는 한계령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산행을 계획하였다. 설악산의 단풍은 천불동계곡과 수렴동계곡을 최고로 꼽고 있다. 작년에 천불동계곡을 보았기에 수렴동계곡을 선택하려고 하였으나 같이 갈 동행인들이 지난해 같은 코스로 갔다고 하여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또한 같이 가는 동행중에 고3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였다. 설악산에 있는 암자나 사찰중에 신흥사를 제외하고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 “백담사”로 이어지는 불교신자들의 순례의 길을 계획하게 되었다. 또한 산행의 기쁨과 목적을 배가시키기 위하여 동행인에 대한 무한한 배려의 마음으로 가지도록 생각하였다. 즉, 부모로서 자녀의 앞날을 기원하는 108배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도록 구성해 보았다. 그러한 여유로움을 우리 모두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이 공동의 힘이 될 것이다. 

  산행코스는 한계령 → 끝청 → 중청봉 → 대청봉 → 중청대피소 1박 → 소청봉 → 봉정암 → 오세암 → 영시암 → 백담사 → 용대리(백담탐방소)으로 정하게 되었다.  


  서안동IC를 통해 안개 낀 중앙고속도로 달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모여서 설악산행을 한다는 그 차제만으로도 즐거움이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 반복된 일들로부터 변화를 가지는 것이 때로는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 그것만으로도 기쁨과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공간속에서 우리는 부푼 기다림을 안고 설악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설악산으로 가는 길에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 커다란 육교아래에서 출발 전에 전화통화를 하였던 친절한 “설악대리운전”사장님을 만났다. 운전대를 넘겨주고 장수대를 지나 한계령으로 달렸다. 한계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화려한 등산복 색상이 무리를 지어 있었고 우리도 그 틈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한계령주차장에서 계단을 통해 설악루(雪嶽樓)에 올랐다. 배낭의 무게로 30여 계단을 오르는데 벌써 숨이 찼다. 아차! 몸풀기를 하지 않았다. 발목을 돌리며 서서히 올라갔다. 한계령 탐방안내소 앞에서 모두 인증사진을 찍었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 “다치지 않고 즐거운 산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셔터를 눌렸다. 

  서북능선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은 비교적 힘들지 않고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당일 또는 이튿날에 좀더 편안한 산행을 하기 위하여 한계령 코스를 택한다. 숨을 몰아쉬며 서북능선을 올라갔다. 

  한계령은 양어깨를 누르고 있는 배낭과 같은 존재이다. 집안의 가장으로 또 주부로 부모로 자식으로 짊어지고 있는 어깨의 무거움처럼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부담과 책임이 존재하듯이 산을 향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편안함과 절반의 노력이라는 사실에 그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단풍으로 덮였다. 같은 발걸음의 어느 분이 “아직 감탄할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가면 죽여 준다”라고 하였다.

  잠시 정덕수 시인의 “한계령에서1” 시를 감상해 본다. 

 


한계령에서 1

                   정 덕 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출처 : http://blog.daum.net/osaekri/12137800


 

 

 

 한계령을 뒤 돌아보면서 서북능선 갈림길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려고 모여 있었다. 이제 귀때기청봉과 내설악 모습을 감상하며 중청봉, 대청봉을 향하여 능선 길을 걸어가게 된다. 뒤에 있던 신부장이 조금 힘들어하는 표정이지만 늘 그렇듯 그는 2009년 개봉영화의 제목 “거북이는 달린다”처럼 그렇게 달린다. 영화의 내용처럼 시골 형사의 찐득하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찰떡의 늘어짐처럼 비록 현재는 약하게 보일지라고 끊어지지 않는, 한번 붙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정열을 가졌다고나 할까!

 

  2009년 지리산 천왕봉을 함께했던 팀에서 새로 영입한 두 분으로 인해 더 즐거운 산행이 되고 있다. 산행 발걸음과 안정된 자세로 보통 체력이 아니였다. 그들의 음식준비로 인해 식사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한계령

                          노래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안개처럼 깔린 언덕위에서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중청대피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중청대피소에도 낮은 구름이 얹혀 있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먼저 화장실로 향하였다. 산행으로 인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다. 말하지 못하고 참았던 것에 대한 인내의 결과, 그 시원함!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스어  catharsis : <심리>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심리 요법에 많이 이용한다. [비슷한 말] 정화ㆍ정화법)

  중청대피소에서는 선착순으로 방 배정을 하기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대피소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린 4명의 예약에 5명이 있어 자리를 잘 잡아야 했다. 늦게 도착하여 3명과 1명을 떨어 뜨려놓은 자리를 권하였다. 그러나 지하방에 모두 같은 자리를 요구 하였다. 한참이나 앞에 서서 기다렸다. 다행히 우리가 요구하는 자리를 주었다. 담요는 더워서 1인당 2장씩 빌릴 수 있으나 지하방은 더워서 6장만 구입하였다.

  지하방에 도착하니 기둥이 있는 자리여서 5명이 넉넉하게 취침할 수 있는 넓이가 되었다.

몇 해 전에 그것을 직접 봤던 기억에 처음부터 안심하고 산행을 했던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신부장에게 문자를 보내고 취사장에 가서 저녁준비를 하였다. 이튿날이 되면 예전처럼 물이 모자라는 상황이 될까봐 물부터 채웠다. 배낭에 넣어 무겁게 가져온 참치, 꽁치통조림으로 여성분들이 찌개를 끊이고, 너비아나(고기산적)도 구워 반찬으로 먹고 또 김과장의 술안주로 하였다. 역시 맛이 좋았다. 5명이 풍족한 저녁만찬을 끝내고 작은 권대리가 제안한 저녁 마실을 대청봉으로 헤드렌턴을 들고 떠났다. 내일 날씨가 아직 어떨지 몰라 시간이 날 때 올라 가보는 것이 공통된 마음이였다.

  대청봉에는 역시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두움으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헤드렌턴 불빛을 나누어 서로 웃으며 사진을 조합하였다. 퍼즐을 맞추듯이 대청봉표지석과 사람의 얼굴을 나누어 비추며 즐겁게 사진을 찍다가 내려왔다.

  김과장의 컨디션이 좋지 않는 모양이다. 전날까지 술로 보낸 것 때문에 몸살기운이 돌아서 약을 먹고 왔다고 하였다. 물론 특수부대출신으로 기본체력이 좋다. 항상 새벽을 가르며 태영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는 단련된 몸이라 걱정되지 않았다.

  밤은 고요하지 않았다. 중청대피소의 밤은 낮에 땀 흘리며 오르던 근육의 긴장보다 예민한 정신부분의 고통이 된다. 낮에 오르막을 오르는 힘든 상황보다 밤에 더 어려움이 있다. 더운 공기와 사람들의 바스락 소리 그리고 냄새와 진동 그러한 것들로 때론 슬픔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적 슬픔이 아니다. 작은 손에 움켜잡은 스틱의 힘처럼 잠시 짧은 시간에 가지는 느낌이다. 큰 산에는 큰 골이 있고, 절망 뒤에는 희망이 있듯이 산행의 기쁨에는 발뒤꿈치가 벗겨지는 아픔도 그것이 아픔보다 기쁨이 되기도 한다. 훈장처럼 가슴을 내밀며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노래가 반복되어 나오는 MP3에 의지하였지만 밤 11시가 넘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신부장이 나간 자리를 따라 나갔다. 달빛이 대청봉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멀리 속초시내의 불빛이 보이고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는 아름다움 밤이 였다.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뜻을 안다) 앞둔 나이에 설악의 밤은 깊어갔다. 쓸쓸하면서도 흐뭇한 밤 분위기이다.  혼자서 한참이나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짧은 티에 등산조끼만 입고 있어서 추위를 느껴 다시 대피소로 들어왔다.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복도에서, 계단에서, 입구에서, 텐트와 침낭과 또 비닐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설악산의 밤은 점점 깊어갔다. 난 수없이 되물어보는 어리석은 질문을 또 나에게 던져보았다. 찾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카카오스토리에 “네 마음속에 있다”라는 정답 아닌 정답의 말을 남겼다. 

  조주스님의 어록에는

  문: 불도가 무엇입니까?

   답: 차나 한잔 들고 가게!


  예전 적멸보궁 봉정암에는 이런 문구의 현수막이 있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마음에 평화를 세상에 행복을”이란 표현은 정말 맘에 드는 글귀이다. 불교의 인연을 논하지 않더라도 억겁(億劫. 무한하게 오랜 시간)의 시간속에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 인간으로 다시 서로 대면할 수 있다는 인연이야 말로 산행 중에 소매를 스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다듬어 생각하면 늘 부족하고 부끄러움 뿐 이거늘, 내 세우던 주장마다 다 거두지 않고 있으니 노승의 한마디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합장하는 기도는 자신에 대한 바람보다는 늘 타인을 위한 염원이다. 자녀에 대한 열정적 108의 기도를 지나쳐 볼 수가 없었다. 종교는 달라도 바라는 마음은 같다. 기도는 같은 것이다. 늘 자신보다는 가족에게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에 평정은 많은 것들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믿음을 갖지 않고 믿는 신뢰의 대상이 언제나 현실과 능력으로 의심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첩첩이 늘어놓고 그것이 믿음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어리석음에 또다시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 믿음은 항상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 시각에서는 그러한 믿음과 신뢰 없이는 무엇이든 이룰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먹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한순간 빛을 발하는 태양의 존재처럼 믿음의 확신과 생에 중요한 계기와 희망을 항상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 지친 밤에 짧은 생각의 무게로 달아 보았다. 복잡하다. 역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편안하게 자는 것이 답일까?    

  잠시 지나쳐 버린 불혹(不惑)의 詩를 감상해 본다.

 

철없는 내 마흔에


흐린 하늘 바라보다

별을 보여 달라 기원하는 밤

시간에 고운 빛깔

입혀달란 큰 바램

내 마흔의 철없음 아니랴

쨍한 별 든 어제

덥다

목마르다

쑥부쟁이 여린 싹으로 주저앉아

투정 심하던 내가

오늘 생각하거니

말없이 해를 쫓아

고개 돌리던 너그러움으로

씨앗 가득 여문 해바라기

아! 그 겸손의 복이였어

관자놀이 아프도록 이 악물고

내 마흔의 부끄러움에 혼절하고픈 밤

술잔엔 소주만 맑았어.

 


출처 ; http://blog.daum.net/osaekri/12137800


 

  철없는 내 마흔 살에는 어떻게 지내왔나 생각해보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워하고, 투정하고, 다가서고, 돌아서고, 그러다가 엎어지고, 그렇게 지내온 시간들, 어느 한순간은 잠시 기억이 나지만 열차를 타고 안개도시를 가는 듯이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다. 누군가 깨우쳐주는 상황이 되어야 그랬다고 맞장구 칠 정도의 기억만 남아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 서른, 마흔이 넘어버리고,  아이들은 훌쩍 자라나고서야 이제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생각난다. 시 마지막 구절에는 “술잔엔 소주만 맑았어”는 세상 모두가 취했다는 뜻으로 혼절할 정도로 소중하고 아픈 시간이였음을 반문하고 있다.    


≪제2일차≫

   ○ 출발(둘째날, 07:08)

  대기소 2층.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3시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건너편 2층 사람들이 장비를 챙기는 소리였다. 일찍 출발하는 모양이다. 새벽시간은 밤새 알 수 없는 언어로 내뿜은 사람들의 온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발로 찼던 담요를 당겨 덮었다. 충청대피소 밖의 날씨를 알아보니 안개가 가득하여 대청봉에서 일출을 볼 수없는 날씨였다. 그래서 더 누워있었다.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이번 산행에 두 권대리의 음식준비로 모든 것이 맛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바로 봉정암으로 출발하였다. 중청대피소 앞에는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넘어오는 사람들과 대피소를 떠나는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끝청갈림길과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자꾸 대청봉쪽으로 돌아보았다. 다시 올 때까지 변하지 말아야 할텐데!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게!

  소청헬기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김과장과 큰 권대리는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한 기도를 위해 먼저 내려갔다. 소청대피소를 거쳐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을 지나가는 풍경이 낮은 잡목들의 단풍들로 또한 낮게 깔러 오는 안개로 환상적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붉은 색으로 깔린 능선의 곡선이 점점 윤기를 잃어버린 손마디의 곡선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어느 때인가 내 손을 내려보니 벌써 거칠고, 굳은  살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도 놓쳐 버릴 수없는 생명의 증거처럼 아직도 굳게 움켜잡아야 할 손이다. 

  봉정암은 주위를 감싸는 바위와 그 속에 단풍으로 물든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고 불당과 삼신각, 석가사리탑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기원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봉정암에서 오랜 휴식을 하였다. 화장실과 세면장을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 법당에서 는 큰 권대리가 108배를 하고 다시 진신사리탑인 석가사리탑에서 또 다시 합장을 하였다.

 석가사리탑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석가사리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와 이곳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고, 통일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이 암자를 새로 보수한 후 이 탑을 보존하였다고 하나 현재 이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5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基壇部)가 없고, 탑을 받치고 있는 바위 윗면에는 연꽃을 새겨 놓았다.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08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긴 시간동안 무릎과 허리에 힘이 집중되어 땀이 비 오듯 흐를 때가 있다고 한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용아장성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기다렸다. 봉정암 뒤편으로는 오세암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 길이 있다. 이곳을 걸어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세암에서 7개의 산(언덕)을 넘어야 이곳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가는 길에 세어 보며 확인해 봐야겠다.


  지금은 통제가 되어버린 용아장성의 모습을 뒤로 하고 모두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의 풍경이 이 설악산의 비경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멋있는 곳이라고 생각이다.

  한참 뒤에 기도를 마치고 돌아보는 권대리와 사진을 찍고 오세암으로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갔다. 경사가 급하여 올라오는 사람들이 무척 힘든 표정이였다. 권대리가 간식을 지친 어느 분에게 선듯 내어 주었다. 산에서는 모두 자연을 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산을 좋아하며 또 봉정암을 오르는 불도들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경사가 끝나고 계곡 길로 접어 들 때에 신부장과 앞서간 김부장, 권대리, 모두를 만났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내려가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몇 번의 언덕을 넘어서니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단풍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담겨서 더 아름다운 모양이다. 그렇게 나타내고자 잘 보이라고 붉게, 노랗게 변하는 모양이다.

  오세암에서 점심을 준비하였다. 큰 권대리는 다시 법당으로 향하고 우린 라면과 남아있는  밥과 누릉지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한기를 느낀 신부장은 바위에서 누워 가을볕을 가슴에 담았고, 김과장은 남아 있는 소주를 비웠다. 그 소주로 다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정리를 마치고 오세암에서 물을 채웠다. 점심식사 때 불경소리가 녹음기의 소리인줄 알았는데 스님께서 직접 마이크로 내는 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감기가 걸려 잠시 훌쩍이면서 외는 불경소리가 계곡속의 아름다운 단풍의 작은 아파리를 떨게 만들었다. 감기가 걸렸지만 친숙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김과장은 조금 전에 남아있던 소주를 비우고 즐거웠다. 이번 산행에 소주가 남는 기록을 남길 것 같아서 인지 이곳에서 무리하게 비웠던 것이다. 그러한 김과장이 즐거움에 못 이겨 그 불경소리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춤이다. 그것은 배낭을 메고, 불경과 어우려진 가락이였다. 불경과 함께하는 몸놀림이였다. 목탁속에 공간을 채우는 울림이였다. 이번 산행에 두고두고 우리들 입에 오르내릴 즐거움을 주었다.

  오세암의 풍경과 불경소리를 아쉬워하며 다시 영시암으로 향하였다. 영시암까지는 조금 지루한 코스이다.


  영시암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는데도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국수를 내어주고 있었다. 수렴동계곡과 오세암의 갈림길에 있는 영시암에도 가을이 왔다. 뒤편으로 단풍이 살짝 내려오고 있었다.

  영시암에서 다시 백담사로 향하였다. 이제 이번 산행의 마지막 도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마을버스가 오가는데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혼자 속력을 내었다. 계곡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의 폭은 점점 넓어져 오고 있었다. 어느 나이든 여자 분은 경보보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관광버스의 예약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몇 사람이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다. 

  삼일 전 지리산행 후에 뭉쳤던 근육이 이제는 완전히 풀린 모양이다. 오히려 빠른 걸음이 익숙해 져서 그 사람들을 지나쳐 앞서 걷기 시작하였다. 어깨에 무거운 배낭의 무게와 땀이 맺힐 때에 백담사에 도착하였다. 먼저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긴 줄에 섰다. 사람들이 역시 많았다. 긴 줄이 점점 짧아지고 탑승이 가까워 질 때 뒤따라 오던 우리 팀이 모두 도착하였다. 차표를 전해 주었다. 주위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있었고, 나는 미리 마을버스를 타고 용대리에 갔다. 백담사에서 전화통화를 한 대리운전 사장님을 만났다. 커피 물을 끓이며 기다렸다. 우리 일정이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정도 늦었다.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서 대리운전 사장님이 소개한 춘천닭갈비집에서 저녁을 먹고 어둠을 헤치며 안동으로 향하였다.

  이번 산행에서 찾고자 하던 것을 역시 찾지 못하였다. 아마도 평생 찾지 못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물음에 답을 내년에도 찾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