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한계령-대청봉-공룡능선-비선대 산행기(5)
땀이 등 뒤를 타고 흘러내렸다. 가지고 간 nikon FE의 셔터를 눌렀다. 땀은 식지 않았다. 1275봉쯤에 신부장과 김과장을 만났다. 중간에서 점심을 해결하기가 곤란하다고 판단되어, 마등령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의견을 모은 후 신부장을 먼저 출발시켰다. 배대리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배대리가 보였다. 김과장도 먼저 보냈다. 배대리의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사진 한 컷을 찍으며 그 힘든 상황에서도 S-S(사진 찍을 때 쓰이는 말)란 말을 내 뱉으며 사진을 찍는다. 역시 설악산의 공룡능선은 그 웅장함과 신비함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지난 새벽 중년의 부부는 벌써 이곳을 지나갔으리라. 낮선 사람들의 긴 행렬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또 이어져 가다가, 교차하고, 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였다.
나한봉근처에서 다시 신부장과 김과장을 만났다. 걸음이 느린 배대리와 함께 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였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보면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점심시간을 넘긴 배고픔을 채웠다. 과일과 사탕이 내게 있어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문득 배대리가 걱정이 되었다. 등산장비도 부실하고 오늘 컨디션도 안 좋은데다가 먹을 것이라고는 물과 라면밖에 없으니 아마 오는 길에 몇 번이나 우리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이런 힘든 능선 길에 몹시 지쳤을 것이라 짐작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모두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30여분 지나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모두 일어서려고 하는데 멀리 빨간 모자를 쓴 배대리가 보이지 않는가! 집나간 동생이 돌아오는 듯 반가웠다. 역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급하였다. 갖고 있던 맛살과 사과, 감을 건네주었다. 신부장과 김과장을 또 먼저 보냈다. 약 30분후에 도착예정인 마등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배대리와 같이 남아 있다가 혼자 일어섰다. 검은 구름이 점점 우리를 덮쳐 왔다. 어제 오전처럼 검은 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듯하였다. 오세암 갈림길에서 다시 두사람을 만났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마등령으로 올라가니 모자가 날리듯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피할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점심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판단하고, 금강굴로 내려가는 길에 해결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셋이서 사진을 찍은 후에 혼자서 배대리를 또 기다렸다. 바람이 숨을 막을 지경이었다. 등선위에서 맞선 바람은 언덕아래에서 오는 바람을 모조리 몰고 오는 듯하였다. 한참 후에 바람처럼 배대리가 나타났다. 크라크 게이블과 비비안리가 출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타났다. 그곳에서 사진을 번개같이 찍었다. 역시 웃는 얼굴! 그러나 하늘에선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계단이 있는 금강굴로 하산하였다. 좋던 날씨가 갑자기 검은 구름과 비를 흘리고 있었다.
○ 마등령(2:20) ⇒ 금강굴(4:26) ⇒ 비선산장(5:40) ⇒ 저녁식사 후(6:20) ⇒ 설악동매표소(7:15)
금강굴로 내려오는 길은 지루하였다. 잠시 계단으로 이어진 길을 지난 후에 낙엽과 자갈길로 이어져오는 내리막 길의 연속이다. 계곡은 북향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어두움을 밀며 내려가야 했다. 샘터근처에 오니 점심을 먹지 않은 굶주림이 밀려 왔다. 주머니엔 사탕이 벌써 다 떨어졌다. 마등령 오기 전에 배대리에게 받아 두었던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앞서 내려간 신부장을 만났다. 앞쪽에는 김부장의 파란 수건이 언뜻 보였다. 낮선 사람들 틈에 끼여 혼자 내려가다가 비를 만났다. 우의를 입기도 그렇고 안 입기도 그러한 어중간한 비가 내렸다. 배낭덮개를 꺼내 덮고 모자를 눌려 쓰고 그냥 내려갔다. 싸구려 등산화가 좌측 복사뼈(비골의 외측 뼈)를 자극하였다. 산행 일주일 전 봉화 청량산 하늘다리를 갔다가 청량사를 거쳐 내려오는 길에 신고 다니던 등산화 앞쪽이 갈라져서 설악산에 처음으로 신었던 것이 발목근처를 자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긴 산행에서는 익숙하게 길들여진 등산화와 장비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기본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해가 보이지 않고 검은 구름이 덮인 계곡에는 곧 어둠이 내릴 듯하였다. 금강굴입구에 도착하니 김부장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금강굴에 올라갔다. 더 늦으면 사진찍기가 힘들 것 같아서 였다.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는 김과장을 만났다. 금강굴 입구로 되돌아오니 신부장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김과장이 온 후에 배대리를 위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갔다. 어떤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이런저런 차림의 빨간모자 쓴 사람이 내려오지 않았느냐고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물어보았다. 모른다고 하였다. 어둠이 서서히 주위를 덮쳐오는 듯하였다. 한참 후에 돌계단을 내려오는 배대리를 만나니 다시 또 반가웠다. 천천히 비선대로 내려갔다.
비선대 근처에 오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곳에서 비빔밥을 사먹었다. 약45분간 저녁식사를 하고 어두워진 길을 따라 설악동을 향하였다. 어둠속에 불빛과 주위 물소리에 맞춰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랜턴을 준비한 것이 이때 필요했던 것이다. 매표소에 김과장과 먼저 도착하니 7시 15분이였다. 그곳에서 여자 두 명이 사람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물었다. 공룡능선을 넘어오다가 한명이 다쳤는데 부축하며 내려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물었다. 비선대 쯤에서 본 듯하였다. 얼마 후 남자 한명이 혼자 내려와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차를 비선대까지 가지고 가서 데리고 올 것이라 하였다. 옳은 판단이였다. 기다리던 두 사람은 운전을 하지 못하였고, 다친 사람을 긴 시간 동안 부축해 걸어오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차가 올라 갈 수 있는 도로에 도착하여 혼자 차를 가지러 온 것이다. 긴 산행 길에는 역시 조심하고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신부장과 배대리가 도착한 후 매표소를 나오니 설악동 7번 버스가 마침 왔다. 해맞이 공원까지 15분정도를 타고 내려왔다. 짐을 정리하고 안동으로 가기위해 주차한 곳을 향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배대리가 운전을 또 하였다. 작년 지리산을 함께 갔다 온 후에 올해 다시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왔으니, 내년에는 대리(代理)에서 과장(課長)으로 진급을 시켜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들의 긴 설악산행은 대관령을 넘을 무렵 쏟아지는 가을비를 뚫으며 마무리 하였다. 그 다음날 뉴스에는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다고 전해주었다. <끝>
-한계령까지 교통문제-
※참고 : 물치 , 해맞이공원(슈퍼앞)에서 한계령 가는 버스
06:50, 08:20, 08:55, 10:35, 11:40, 12:55, 14:40, 16:15, 16:30, 16:45, 18:15,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