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울고넘는 박달재 시랑산행 후 단양 장다리식당 마늘밥
제천 울고넘는 박달재 시랑산행 후 단양 장다리식당 마늘밥
- 2012년 2월 5일 일요일 맑음
- 높이 : 박달재 시랑산 691m
- 출발 : 안동(9:11)→서안동IC(9:21)→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9:47)→제천터널(10:04)→충주IC(10:13)→박달재(10:27)→시랑산행시작(10:35)→능선, 정상1.7km(11:00)→시랑산 정상(11:57)→휴식후 하산(12:20)→능선(1:04)→박달재 주차장(1:17)→안동으로출발(1:22)→단양 장다리식당(2:05)→식사후출발(3:04)→단양IC(3:22)→서안동IC(3:55)→집앞도착(4:03) (총 산행 소요시간 약 2시간40분)
<시랑산 유래>
시랑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관직명으로 지금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벼슬이며 뒤에 총랑(摠郞),의랑(議郞)등 으로 수차례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백운면 공전리 소시랑골 에 소씨 라 하는 사람이 태어나 시랑 벼슬까지 올랐다 하여 이곳을 지금도 소시랑 이라 하며
이 마을의 뒷산을 시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 전합니다
( 출처 : http://blog.daum.net/jhs03260425/38 )
<박달재의 유래>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서 금봉이라는 처녀를 만나 깊은 정을 나누게 되었다.
갈 길이 바쁜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후 백년가약을 맺기로 굳게 약속하고 한양 길로 내달렸으나 금봉과의 상념에 젖어 과거에서 그만 낙방하였다.
낙방거사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곧바로 평동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한편, 날마다 장원급제를 빌던 금봉은 박달을 기다리다 그만 상사병이 깊어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박달이 어렵게 마음을 추수려 평동에 돌아왔으나 막 금봉의 장례가 치러진 뒤였다.
박달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다가 금봉의 환영을 보게 되고, 금봉의 환영을 쫓던 박달은 고갯마루에서 금봉을 끌어안다가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만다.
그 후로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