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의 넋두리

<시> 엉겅퀴

무당 거미 2020. 7. 30. 11:52

엉겅퀴
논뚝에 핀 엉겅퀴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24] 엉겅퀴

엉겅퀴

 

이서화

 

엉겅퀴는 자꾸
숨으려는 색깔 같다

매 맞은 일을 자꾸
잊어버리려는 색깔 같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아득한 가랑이 속 운세를 떼던 여자의 눈두덩 색깔 같다

삼거리 지나 세 번째 파란 슬레이트 집 여자, 엉겅퀴 한입 가득 물었다 아무도 모르게 뱉고 작은 시멘트 다리 건너기 전 기역자 집 남자, 욕설 반 푸념 반 섞어 보란 듯이 뱉어내던 그 엉겅퀴

마을 사람 중엔
보라색으로 물든 이빨들이 많았다

엉겅퀴는 자신을 몰라서 모르고
집집들은 짓이겨진 보라색 속으로 숨고
입안에 가시들이 자라고
엉겅퀴는 마을의 집을 빠져나와
흔들리는 풀숲,
바람을 옮겨 다니며 욕설처럼 핀다

―이서화(1960~ )

 

외진 마을 언덕의 허드레 식물인 엉겅퀴 꽃이 한창입니다.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그 짙은 빛깔과 잎에 돋은 가시 때문입니다. 진보라는 멍이 가셔질 때의 그것을 닮았고 가시는 '매 맞은' 마음을 닮았습니다. 그 엉겅퀴들이 모여 핀 듯한 마을이 있습니다. "삼거리 지나 세 번째 파란 슬레이트 집 여자"와 "시멘트 다리 건너기 전 기역자 집

남자"는 입에서 '엉겅퀴'가 뱉어집니다. 구체적 지리의 제시로 '보라색으로 물든 이빨들'이 많던 마을의 비극을 실증합니다. '짓이겨진 보라색 속으로' 숨던 탄광촌 일가(一家), 일가(一家)들의 서사입니다. '바람을 옮겨 다니며 욕설처럼' 피고 지는 삶이, 지금도 여전히 외진 자리마다 가시 돋은 허드레 '꽃'으로 피고 집니다. 엉겅퀴, 그 이름처럼 말이죠.

 

출처: cafe.daum.net/scyms/HtpN/50717?q=%EC%A1%B0%EC%84%A0%EC%9D%BC%EB%B3%B4%20%EC%97%89%EA%B2%85%ED%80%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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